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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리드 오답노트

문제는 리더쉽?

“그것은 왕이 된 적도, 왕이 될 수도 없는 자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 [폴라리스 랩소디]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 배경이 꽤 재미있는데, 설명하려면 길고 (귀찮고), 술술 읽히는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테크리드 오답노트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실 이 ‘프로젝트’ 자체는 꽤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풀어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라면, 세간에 떠돌아 다니는 무수히 많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조언”들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그 대부분은 리더가 되어 본 적도, 리더가 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리더에 투영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단지 그런 이유로 그 수 많은 이야기들이 무작정 틀리다고 하진 않겠습니다. 어쨌든 다 틀린건 아닙니다. 하지만 리더의 자리에서 리더의 역할을 고민하고 수행하려다 보면, 그런 세칭 리더쉽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곁다리만 짚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멋모르는 조언에 리더가 팔랑거리면 조직이 우왕좌왕 하는 겁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무수히 많은 리더쉽 어쩌구를 마주하게 됩니다. 강연이든 수업이든 멘토링이든. 리더는 잘나야 하고,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하고, 리더는 책임을 져야 하고, 리더는 리더는… 나는 아니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능력이 그쯤 되면 무엇하러 리더라는 무거운 자리를 짊어지고 살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갈 노릇입니다. 내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냥 혼자 다 씹어 먹을텐데. 무슨 자선의 히어로인지 아님 슈퍼 엄마인지.

리더에겐 리더의 소임이 있겠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리더쉽보다 팔로워십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조직의 규모/구성에 따라, 특성과 역할에 따라 그 리더가 맡아 주어야 하는 부분은 다릅니다.

신사업을 위한 5인 내외 TF 리더와 50인 규모 운영팀 리더는 그 역할과 성격이 완전히 정 반대입니다. 10인 이하 개발 조직의 리더가 실무 코드를 안 하면 욕먹겠지만, 50인 이상 대규모 개발 조직 리더가 업무 시간에 코드나 짜고 있으면 그것도 욕 먹을 일입니다. 그 두 가지를 같은 리더쉽으로 퉁 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군가가 잘나서 리더가 되는게 아니라,
어떤 이유라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리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는 리더쉽Leadership이 아니라, 팔로워십Followership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겹게/ 받아 온 리더쉽은 상당 부분 “잘난 사람 되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꼭 잘난 사람이 리더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테크 부문을 중심으로 보면, 기술적 해결력이 가장 뛰어난 탑테크Top Tech를 리드로 세우는건 여러모로 막대한 손해입니다. 기술력이 리더쉽을 보장해 주지도 않을 뿐더러, 리더가 마땅히 맡아야 할 관리 업무/책임으로 인해 실무의 기술력을 반감시킵니다.

회사와 같은 조직체에서 리더쉽Leadership 은 직무/직책에 대한 공시 하나면 충분합니다. 팀원이니 팀장을 따르고 직속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따릅니다. 상사가 거지발싸개 같을 수도 있습니다. 월급쟁이 형편이 다 거기서 거기죠 뭐. 그렇다고 “불건전하지 않은 업무 지시”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건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소양 문제입니다. 여기서 ‘건전한’ 지시가 아니라 ‘불건전하지 않은’ 지시라는 것을 강조하겠습니다. 명백하게 하면 안 될 일이 아닌 이상에야 따르는게 맞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동서고금 조직 체계 성격을 막론하고 조직 운영 원칙상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은 명시적입니다.

리더는 불안하고, 불안한 리더는 나르시시즘으로 자신의 리더쉽에 당위성을 만듭니다. 내가 무엇이던 더 잘나서 네들 머리 꼭대기에 섰다. 같은 당위성 말입니다. 리더쉽의 신화myth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것은 분명 신화Myth 입니다. 아니 젠장, 그 수 많은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들을 교차 검증해 보세요. 백에 아흔아홉이 하루 148시간을 일하면서 자기 계발 따로 하며 여유 있는 농담을 즐기는 슈퍼 휴먼이라니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실현 불가능하거나 모순적인 요구를 동시에 합니다. 클래식하면서 모던하고, 거칠면서 세밀한,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그런,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500원) 같은 그런 사람. 아이고 비위도 좋으셔 벼룩의 간을 내어 드시네. (TMI. 충청도 헤리티지)

판단은 공정하지만 실수에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게 낫지 않습니까? “내 실수는 가볍게, 내 실적은 두둑하게”. 이건 어느 모로 보아도 리더 입장에서 나올 말이 아닙니다. 뭐, 굳이 현실에 존재할 필요가 없으니, 여러 관점의 이야기를 짜깁기로 이어 붙이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즉, 그런 이야기들이 리더쉽에게 바라는 말은 될 수 있어도

리더쉽이 따라야 하는 지침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귓방망이가 팔랑거리면 조직이 산으로 갑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 아니 아까 그 산이 맞는가벼. 그런데 좋은 리더요? 허허허.

 

재삼 강조합니다. 잘나서 리더가 되는게 아닙니다. 일단 이런 전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리더의 역할을 맡는데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구석이 있으니 리더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구석’이란 것은, 연차가 쌓여서 기준 임금도 높고 그나마 경험은 좀 있으니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체력도 좋은 젊은 피들은 실무하게 냅두고 너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관리/잡일하면서 책임질 일 생기면 감봉해라,에 가깝다고 생각합시다. 꼭 그런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합니다.

촛점을 리더쉽이 아닌 팔로워십에 맞추면, 팀원을 이겨 먹어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드 테크 조직이라도 그럴 필요가 있는 조직은 못 봤습니다. 대신 남들이 따를만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집중하자는 말입니다. 여기서 따를 만 하다는 것은, 결국 결정/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내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기초이고, 시작이며 끝입니다. 그것 만이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쁜 결과를 감내하기 보다는 남 탓을 하기가 훨씬 쉽고, 조금이라도 만만한 쪽에 화살을 돌리기 쉽습니다. 많이 하던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마주했던 많은 리더쉽의 문제들이 사실은 리더쉽에 대한 추구에서 발생했습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것이, 굳이 그런 이상한 짓 안 해도 회사의 조직 구조도에 리더로 되어 있으면 리더쉽이 딱히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팔로워십은 그런, 불안한 리더쉽에 매우 예민합니다. 알아서 자기 자리를 파내고 흔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좋은 리더쉽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 손을 떼기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